우리의 역사

한 통의 편지에 담긴 우리의 시작 (1912~1914)

한국인으로서 처음으로 헌신한 강범식 형제가 찰스 테이즈 러셀 형제에게 보낸 편지

한국 신권 역사의 시작은 한 통의 감사 편지에 담겨 있습니다. 「파수대」(영문) 1914년 8월 15일 호에는 헌신한 첫 한국인 형제로 알려진 강범식 형제의 편지가 실렸습니다. 그는 찰스 테이즈 러셀 형제에게 이렇게 썼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사랑하는 R. R. 홀리스터 형제를 보내 주셔서 복음으로써 저를 구출해 주신 것에 대하여 감사합니다.” 외부 세계에 굳게 닫혀 있던 이 나라에도 마침내 왕국의 좋은 소식이 전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작은 시작이 한국 형제 자매들이 걸어온 110여 년 충성의 여정의 첫 걸음이었습니다.

일제 강점기, 첫 큰 시험 (1939~1945)

일본 천황 숭배와 신사 참배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수감된 죽음 앞에서도 타협하지 않은 초기 형제 자매들

처음 진리의 씨앗이 뿌려진 지 25년 후, 형제들은 첫 큰 시험을 마주했습니다. 1939년 6월 29일, 일본 경찰은 천황 숭배와 신사 참배를 거부한 한국의 여호와의 증인 33명을 일제히 체포했습니다. 형제 자매들은 혹독한 고문과 수감 생활을 견뎌야 했고, 그중에는 옥중에서 사망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충실한 본을 보고 강점기가 끝난 이후에 진리를 받아들이게 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폐허 속에서 다시 일어서다 (1949~1954)

그로부터 오래지 않아, 바로 한국 전쟁이 닥쳤습니다. 그러나 형제들은 전쟁과 폐허 속에서도 여호와의 일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1949년 길르앗 학교를 졸업한 돈 스틸 형제 부부를 비롯한 선교인들이 한국에 도착했습니다. 1952년부터 「파수대」지가 정식 등록되어 발행되었고, 1953년 한국 지부가 정식 설립되었습니다. 그리고 1954년 처음으로 지역 대회가 서울에서 열렸습니다. 예상 참석자 700명을 훨씬 넘는 1,245명이 모였고 284명이 침례를 받았습니다.

1949년 길르앗 학교를 졸업한 후 한국에 도착한 돈 스틸 형제 부부를 포함한 8명의 선교인들
1952년 9월 정식 등록된 한국어 파수대의 변천사
1954년 한국에서 처음으로 열린 지역 대회에 참석한 돈 스틸 형제 부부와 회중 성원들

70년의 양심 — 끝까지 충실하게 (1953~2020)

전쟁의 폐허에서 회복된 한국 형제들 앞에는 또 다른 긴 시험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한국은 국민 개병제를 시행하는 나라로, 모두가 병역 의무를 이행해야 하였습니다. 1953년 박종일 형제는 양심에 따라 군 복무를 거부함으로써 그리스도인 중립의 본을 세웠습니다. 그 후 70년에 걸쳐 같은 본을 따른 한국 형제들은 19,000명이 넘고, 그들이 감옥에서 보낸 시간을 전부 합하면 36,000년이 넘습니다. 심지어 아버지가 출소하기도 전에 아들이 같은 이유로 감옥에 들어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인내는 점차 변화의 물결을 일으켰습니다. 마침내 2018년 6월 28일 헌법재판소는 대체 복무를 인정하지 않는 병역법을 헌법불합치라고 판결했고, 같은 해 11월 1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에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이에 따라 2020년 10월부터 대체 복무 제도가 시행되었지만, 일반 군 복무의 두 배에 달하는 기간 동안 복무해야 하며, 합숙 시설에서 사실상 수용자와 유사한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형제들은 대체 복무를 수행하기로 결정했지만, 이 제도를 거부하여 재판을 받고 있는 형제들도 있습니다. 어떤 결정을 내렸든, 모든 형제들은 자신의 위치에서 그리스도인 양심을 지키면서 충실하게 여호와를 섬기고 있습니다.

2018년 11월 1일, 한국 대법원에서 양심적 병역 거부가 범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결한 이후로 가석방 된 65명의 형제들 중 일부
2020년 10월 시행된 대체 복무를 수행하기 위해 시설에 들어가기 전 가족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는 형제들

국제적인 가족과의 만남 (1963~2019)

한국이 세계 형제 자매들에게 처음으로 문을 연 것은 1963년이었습니다. 그해 “영원한 기쁜 소식” 국제 대회를 위해 19개국에서 400명이 넘는 외국 대표자들이 한국을 찾았는데, 그것은 당시 한국을 방문한 가장 큰 관광단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612명이 침례를 받은 그 대회는 한국 형제들에게 잊지 못할 순간이었습니다. 1973년 “하나님의 승리” 대회에는 29,000명이 모이고 2,002명이 침례를 받았으며, 1998년, 2009년, 2014년, 2019년까지 국제 대회의 기쁨이 이어져 왔습니다.

1973년 한국에서 열린 세 번째 국제 대회 “하나님의 승리” 대회에는 29,000명이 참석했고 그 중 2,002명이 침례를 받았습니다.
2019년에 열린 “사랑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국제 대회

그리고 다시, 2027년

한 통의 편지에 표현된 한 형제의 믿음은 오늘까지 이어져 왔습니다. 진리의 씨가 처음 뿌려진 후 110여 년이 지난 오늘, 한국에는 1,239개의 회중과 10만 명이 넘는 전도인이 있습니다. 우리는 2027년에 여러분과 함께 이 충실의 유산을 이어가며 새로운 한 페이지를 써 내려갈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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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 “사랑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국제 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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